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문단 편집) ==== 투항한 공비들 ==== * 상위 이형수 * 중위 김익풍 - 2009년 [[이승복]] 41주기 기념식에 참가하여 이승복의 친형 이학관 씨에게 사죄하기도 했다. * 중위 조응택 - 11월 29일, 본대에서 낙오된 뒤 투항하여 1호 투항자가 되었다. * 중위 고등운 * 소위 정동춘 * 소위 김광춘 * 소위 김정명 - 총상을 입고 쓰러진 뒤 생포되어 국군병원에서 수혈받고 생존했다. 기자회견에서 "따뜻한 겨레의 피로 살아났다."고 발언했다. 이상의 7명이 투항 후 대한민국에 귀순한 무장공비들이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정권을 비난하는 등 선전 활동을 했다.[*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과 자유를 보여주기 위해 정동춘과 고등운을 데리고 서울 시내의 이발소와 백화점 나들이를 시켜줬다는 기사가 있다.] 이후 60년대 당시 한창 서울 내 건설이 시작되던 여러 [[시범아파트]]에 국가 명의로 전세를 줘서 흩어져 살게 하면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몇 년 간격으로 서울 내 다른 민간 지역으로 이들을 이사시켰다고 하며, 예를 들어 김정명은 동작동 시범아파트에 2년간 거주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관리받았는지, 박정희 정권이 끝난 이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김익풍이 2009년 [[이승복]] 41주기 기념식에 참가해서 사죄를 했다는 것이 유일한 기사. 2020년대 현재는 이들 모두 80이 넘는 고령일 것이므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